수리동성당

본문 바로가기

  • 미사에 대한 설명
  • 가톨릭의 제의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제식인 미사에 대한 안내입니다.
  •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세우셨습니다. 유다인의 전통에 따르면 매년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 땅을 탈출한 것을 기념하여 파스카의 제사, 곧 해방의 제사를 야훼 하느님께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만찬을 함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세상에서의 파스카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파스카의 제물인 어린양 대신 당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치는 감사의 제사를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사는 오늘날까지 미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사는 그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선포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류를 위해 바치는 사랑의 제사인 성찬례는 그 목적과 방법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내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기억되어, 인류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 서로를 사랑하여 함께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입당송’은 미사의 시작으로, 사제가 교우들이 모여 있는 제단으로 나올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목적은 미사를 시작하며 참여하는 신자들의 일치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고, 교우들이 전례시기와 축제에 맞게 그 마음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노래는 성가대와 교우들이 교대로 하거나, 전원이 하거나 성가대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당 예식 때에 노래가 없는 경우에는 미사경본에 있는 입당송을 교우들이 외우거나, 그중 몇 사람이나 주송자 또는 사제가 외우도록 합니다.

    사제와 복사들은 사제석까지 와서 제단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제단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사제와 복사들은 제단에 깊이 절을 하게 되는데, 지역의 풍습에 따라 제단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단에 인사를 올린 다음 제단에 향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와 분향은 이제 지내게 되는 미사에 주님의 몸과 피가 봉헌되며,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중심이 되며 주춧돌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미사의 시작 ― 사제가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우리의 제사에 하느님을 초대하는 것이며,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우리가 고백하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내는 미사는 성부.성자.성령의 하느님과 그를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제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이 미사를 통해 사랑을 전하시며, 신자 공동체는 하느님께 하나되고 갈림 없는 흠숭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우들에 대한 ‘인사’에 관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사제가 인사하면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하느님백성 모두와 함께 계십니다.’라는 뜻이며, 신자들의 응답은 하느님과 사제와 신자가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신비로운 미사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같이 하느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온전히 현존하고 계십니다. 미사는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함께 서로를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개회식 때의 ‘참회’에 관해서입니다. 이는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개인적인 잘못에 대한 참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담고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참회도 있어야 합니다. 나만이 깨끗하다고 깨끗하게 살 수는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잘못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갖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고백하고, 이를 반성하고 참회하여 더 나은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한 참회인 것입니다.

    참회 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금 하느님 대전에서 새롭게 살고자 하오니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어여삐 보아주시라는 기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다 잘 살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용서하시고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없다면 구원에 이르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여 자비를 구하는 백성들의 노래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대영광송’은 교회가 성령 안에 모여 성부와 어린양에게 영광을 드리며 간구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훌륭한 성시입니다. 감사가와 함께 초대교회 신자들이 부르던 성서의 영감을 받은 시편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성탄 때의 천사들이 노래하던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으로 시작하는 대영광송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삼위 모두에 대한 영광을 드리는 노래입니다. 대림절과 사순절이 아닌 모든 주일과 대축일 그리고 특수한 행사 때에 노래하든지 외우게 됩니다.

    ‘본기도’는 교우들의 온 마음을 모아 사제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모은 기도’라고도 부릅니다. 그 미사의 주제가 드러나는 기도로, 사제는 그날의 축제에 대한 의미를 담아 바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바쳐지는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사제 혼자 기도하여도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바로 자신들의 기도로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제만의 기도가 아닌 공동체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기도가 바로 본기도이기에, 기도가 끝난 후에 신자들은 마음을 결합하여 동의하며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말씀의 전례’는 성경의 독서들과 그 사이를 잇는 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서는 구약과 신약의 서간을 전례력에 따라 봉독하고, 복음은 4복음서를 역시 전례력에 따라 봉독하는 것입니다. 이 독서에는 미사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입니다. 독서자와 사제가 독서와 복음을 낭독하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서를 읽은 후에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제1독서’ 끝에 불리는 노래는 ‘층계송’이라고도 하였던 환호성입니다. 말씀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대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담아 환호하는 소리로, 시편 가운데 그날의 독서와 관련 있는 내용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화답 성가로 다른 노래를 부를 경우 꼭 독서와 일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 시구를 읽는 성가대원은 독경대나 다른 적당한 자리에서 시구를 노래하고, 신자들은 앉아서 후렴을 같이 합니다. 바로 이 성가대원이 독경대의 층계에 서서 노래를 불렀던 이유 때문에 ‘층계송’이라고 불려왔던 것입니다.

    복음 전에는 ‘복음환호송’을 노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알렐루야’라고 하여 기쁨을 나타내는 시구였는데, 사순시기에는 기쁨의 알렐루야를 부르지 못하므로 전례시기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 ‘복음환호성’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알렐루야를 부르지 못하는 사순시기에는 시나 복음 전 성구만 노래하며 성가대나 성가대원이 부를 수 있고, 신자들과 함께 외울 수도 있습니다. ‘부속가’라고 불리는 송가도 있는데, 부활과 성령강림 날에는 의무적으로, 다른 날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말씀의 전례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품위를 지니고 있는 독서입니다. 복음은 독서와 달리 행렬과 환호와 강복과 기도가 먼저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무나 읽을 수 없고, 부제나 부제가 없을 때에는 사제만이 낭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복음사가가 전하는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하면 ‘주님 영광받으소서.’라고 작은 십자성호를 세 번 긋는데, 이는 복음말씀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며 입으로 고백하겠다는 표시입니다.

    복음 낭독이 끝나면 사제는 ‘강론’을 통하여 그날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체험하며 하느님을 만났던 일들,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백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들을 오늘에 맞게 펼쳐주는 것이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늘 이 자리에서 되새기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곧 강론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한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강론이 끝난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신앙고백은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들입니다. 그 주된 내용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창조로부터 강생을 통해 성령강림과 교회와 성사들의 신비에 대한 동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신앙고백이 있는데, 사도들이 직접 예수께로부터 배운 내용이 담긴 사도신경과 성 아타나시오 성인이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전하는 아타나시오 신경 그리고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작성된 니케아 신경이 있습니다.

    ‘보편지향기도’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하여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주례사제가 이끄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면 신자들이 각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기도가 끝나면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로 답하게 됩니다. 물론 특수한 공동체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내용은 첫째, 교회를 위하여. 둘째, 국가와 위정자들을 위하여. 셋째,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넷째, 지역공동체를 위하여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제는 이 모든 기도를 모아 성자를 통해 성부께 바치는 기도로 맺게 됩니다.

    보편지향기도가 끝나면 ‘봉헌 성가’가 시작되며 ‘성찬전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성찬전례’는 그리스도께서 파스카의 제사와 잔치를 설정하심으로 교회 안에서 십자가상 미사성제가 계속된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미사 때마다 되풀이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함으로 당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 미사 때마다 이루어지는 성찬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 제사와 동일하게 맞추어 놓은 것입니다.

    ‘예물 봉헌’은 장엄한 행렬로 이루어집니다. 이 봉헌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입니다. 원래 초대교회에서는 이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집에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나누고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때에 가난한 형제들과 교회를 위한 금전이나 혹은 다른 예물도 함께 봉헌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물이 봉헌되고 제대에서는 성체포를 깔고 빵과 포도주,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식탁으로 준비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만찬을 거행할 때 항상 빵과 포도주와 물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빵과 포도주와 물의 사용에는 엄격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미사 거행을 위한 빵은 순수한 밀가루를 사용하여야 하며,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은 누룩 없는 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포도주 역시 포도 열매로 생산된 순수 자연 술이어야 합니다. 이 같은 엄격한 규정은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가 불순물로 인하여 그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로 실재로 우리에게 나누어진다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드리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의 크고도 크신 은혜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다시 바치오니 이를 우리의 생명의 양식과 음식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향유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며 사람이나 자연이나 할 것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 역시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나나 우리만이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다짐입니다.

    성찬전례 시 포도주를 봉헌하게 되는데, 이때 물을 약간 섞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창으로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 나왔음을 기념합니다. 또 한 가지 의미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거룩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울러 인간인 우리도 하느님의 신성에 조금이나마 참여하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신성과 인성의 이 같은 어울림은 하느님의 인간 사랑과 이에 대한 인간의 공경을 나타냅니다.

    빵과 포도주를 바친 사제는 곧 손을 씻게 됩니다. 모든 제사에서는 제물을 바치게 되는데, 옛날에는 그 제물로 동물을 잡아 바쳤습니다. 때문에 동물을 잡을 때 제사장의 손에는 피와 내장 등의 여러 가지 불순물이 묻게 됩니다. 이 같은 손으로는 제사를 바칠 수 없기에 제물을 준비한 후에는 손을 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에까지 이르러 사제가 손을 씻는 것인데, 현재의 의미로는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봉헌함을 나타냅니다.

    미사 때에 제물을 바친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 제사를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도록 기도하자고 권유합니다. 이에 신자들은 ‘이 미사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구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미사성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를 살려주는 생명의 관계요, 공동체 구성원 서로서로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를 나누는 기쁨의 관계를 맺어주는 추억의 되살림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엉뚱한 곳에 가 있다면 그 제물과 기도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런 기도일 것입니다.

    ‘예물기도’는 이미 준비된 예물을 주님께 바치는 결정적인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극한 사랑으로 마련해 주신 것을 봉헌하면서 그 지극한 사랑이 영원히 우리 부족한 사람들에게 지속될 수 있게 해주십사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성자를 통해 성부께 바쳐지는 이 기도는 한없는 자기 부족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너무도 부족한 우리이기에 한없이 많은 부분을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부족함에 고개를 묻고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한 부분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받아주시라는 기도입니다.

    ‘감사송’은 우리들에게 베푸신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어 인간들로 하여금 그 세상을 다스리게 하심에 감사드림을 시작으로 하여, 부족한 인간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보내주시고 마침내 그 아드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아드님이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하느님은 모든 천사와 성인과 사람들 모두에게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라는 기도이며, 곧이어 ‘거룩하시다.’로 하느님께 직접적인 찬미의 노래를 드립니다.

    제물로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을 ‘성변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기도를 ‘성찬기도’, 곧 ‘감사기도’라고 합니다. 이때 사제는 두 손을 빵과 포도주를 향하여 덮게 되고, 복사는 신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종을 칠 수 있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동안 우리가 빵과 포도주로 봉헌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어,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은 이제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미사 중 종을 치는 것은 신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사 중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종을 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성변화 때와 성체와 성혈을 들어 하느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절정으로 느낍니다. 이때 종을 치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생각과 말과 행위의 모든 것을 집중하게 합니다. 예로부터 종은 화재나 수재 등 긴급한 구조를 바라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기뻐해야 할 환희의 순간에 치게 됩니다. 미사의 종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환희를 함께 느끼는 미사의 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에 말씀과 동작으로 ‘성찬제사’를 세우셨습니다. 빵을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주를 드시고 ‘받아 마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빵과 포도주는 당신의 몸과 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것이며 앞으로도 이 신비로운 예식을 계속 거행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찬제사는 오늘날에도 매 미사 때에 사제를 통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작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여!’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성찬례를 세우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어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신비를 환호로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눈으로 보고 신앙의 마음으로 다가서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심으로 구원이 되기에 언제나 이 신비를 가슴에 새기며 이미 사랑으로 받은 구원의 기쁨을 세상 곳곳에 전하겠다는 굳은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몸과 피는 언제나 그를 받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기에 이를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몸을 바쳐 인간을 사랑하셨음과 같이 그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찬례에서만 그 기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와 신자들의 자기생활의 봉헌이며, 이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감사기도’에서 사제는 성령으로 우리 모두가 한 몸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로부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시는 신자들은 같은 주님을 모시기에 한 몸을 이룬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거행되는 성찬제사를 봉헌한다면 일치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고백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입니다. 바로 여기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넓게 보아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통공을 이야기합니다. 통공이란 서로 그 공이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이들의 공로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며, 살아 있는 우리들의 기도는 죽은 이들의 구원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바치는 기도가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가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한 사랑의 통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기도의 마지막에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느님께 대한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삼위일체의 신비로서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영예와 영광을 받으시라는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기쁨에 찬 영광송입니다. 이에 백성들은 ‘아멘!’이라는 우렁찬 함성으로 응답하여 사제와 백성이 한 목소리로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장엄한 노래로 감사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주님의 기도’로 미사는 영성체 예식에 들어갑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들에게 전해져서 우리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살게 해달라는 기도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모든 인류에게 용서를 주시고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에 갈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신자들은 예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어 평화를 주셨음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가 인류 안에서도 서로 나누어지기를 갈망하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형제, 내 이웃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지지하는 강한 연대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같은 빵을 나누는 사람들의 평화의 연대는 서로를 굳건하게 맺어주는 강력한 끈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평화의 인사 후에 사제는 빵을 쪼개는 동작을 합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나누어 우리들에게 주셨음을 상기하며 이처럼 나누어진 빵이 받아 먹는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신비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제는 빵을 조금 떼어 포도주에 담그는데, 이는 몸과 피가 함께하여 온전히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우리에게 나누어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빵의 나눔은 성찬제를 나눔의 잔치로 발전하게 합니다. 빵을 나눔으로써 생명을 나누는 믿는 사람들의 나눔은 우리들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참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를 위해 제사의 제물이 되신 주님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으니 그 사랑으로 우리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메우시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더불어 그 부족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도록 해달라는 고백이며 청원의 기도입니다. 자비와 평화는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은 그 자비와 평화가 이제 우리 삶에까지 펼쳐져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영성체 전 기도’는 사제가 낮은 목소리로 영성체를 준비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언제나 부족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그 크신 생명의 나눔에 감사하며 받아 모시오니, 부족함을 탓하지 마시고 오히려 지켜주십시오.’라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또한 제대에 깊게 절하며 사제 개인뿐 아니라 모든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분쟁과 반목 없이 평화로운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겸손과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후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높이 쳐들고 백성들을 이 잔치에 초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이 잔치의 초대는 바로 하느님 나라에로의 초대이며, 초대받은 사람들이 합당치는 않으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이끌어달라는 응답을 함으로써 잔치는 이루어집니다. 이제 이 잔치는 영성체로 믿는 사람들 안에서 확고히 펼쳐지며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막아내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체송’은 매 미사 때마다 다르게 바쳐지는데, 이는 최후의 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동산에 오르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읊으셨던 시편을 상기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신자들과 함께 바치는 이 노래는 그리스도의 성찬에 초대받았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영성체송은 사제가 영성체할 때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하는 동안 계속하다가 적당한 때에 끝마칩니다. 시편을 노래하거나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미사경본의 영성체송을 신자들이 외우게 됩니다.

    ‘영성체’는 미사 중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들은 이 영성체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신자들과도 하나가 됩니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성체만 영하는 단형영성체와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양형영성체가 있는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형영성체만 합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는 대죄 중에 있지 않아야 하고,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한 시간 전에는 먹지 말아야 하는 공심재를 지켜야 합니다. 현 교회법에는 신자들의 의무로서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에 성체를 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성체를 마치고 남은 제병을 감실로 옮긴 후 사제는 성작과 성합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빵과 포도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기에 그릇에 남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릇을 씻으면서 사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몸과 피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는 생명의 약이 되게 해달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이 행위와 기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우리들 삶의 원천이요, 양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참으로 소중하신 보물을 그 뜻에 맞게 간직하고 펼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미사 때에 제일 늦게 바치는 기도가 ‘영성체 후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감사의 기도와 이 성체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청원의 기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성체를 받아 모신 신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 것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체험하고 이에 대한 기도의 마음을 모아 사제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후 기도’ 역시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올리는 공동체의 모음 기도인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를 마친 후에 사제는 ‘하느님의 강복’을 백성들에게 주게 됩니다. 이 강복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공동체의 모임을 마친 후에 세상에 파견되어 각자의 사명을 펼치는데, 필요한 힘과 사랑을 내려주는 가시적인 말씀과 표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구원하시려 하였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이 같은 하느님의 구원의 표지로 받아가는 것입니다. 사제가 십자가 표시를 그으면 신자들도 따라 그으면서 ‘아멘!’으로 크게 응답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미사는 ‘파견’으로 마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등의 말로 사제가 파견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파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당신과 함께 삶을 나누시며 알려주신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신 후에 둘씩 짝지어 고을마다 보내신 것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이 파견은 단순한 마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친교와 나눔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펼쳐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포의 장인 ‘파견’으로 미사를 마치게 됩니다.


    주소 :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로 119| TEL : 031) 396-3401|FAX : 031) 396-3402
    Copyright © 수리동성당. All rights reserved.
    TOP